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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이반시티퀴어문화기금사업] 퀴어, 페미니스트, 자살사별자 이야기 – 단편영화 <아빠가 자꾸 살아 돌아와>
사업명 yourmovie20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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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퀴어, 페미니스트, 자살사별자 이야기 - 단편영화 <아빠가 자꾸 살아 돌아와>(약칭: 아살돌)의 각본, 감독을 맡은 김현수라고 합니다.

 

사실 영화 "감독"이라고 저를 소개하는 것이 매우 어색할 정도로 저는 영화를 오래 전부터 공부했거나, 영화쪽에서 일을 해본 경험은 없는 그저 평범한(?) 페미니스트 활동가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보낸 저의 20대는 즐겁고 뜨겁고 치열한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가깝거나 조금 먼 사람들을 자살로 떠나보내야 했던 기나긴 애도와 추모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간을 혼자서, 또 친구들과 함께 겪으면서 남아있는 사람들, ‘자살사별자(자살로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그렇게 <아살돌>을 언젠가는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혼자 생각만 하던 중에 올해 5월, 초보 대상 퀴어영화 만들기 워크숍 참여자로 선발되었고, 감사하게도 비온뒤무지개재단 <이반시티퀴어문화기금사업>에 선정되어 제작비 일부를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건 너무 잘 알려진 현실입니다. 특히 퀴어들은 누군가의 부고가 오면 사인이 무엇인지는 서로 묻지도 않을 정도로 퀴어에게 자살은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살로 떠난 그 이후, 남은 자살사별자의 삶은 어떨까요? 자살사별자들은 떠난 이에 대한 죄책감, 슬픔, 원망, 분노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특히 ‘왜’ 그가 죽었는지, ‘왜’ 나는 막지 못했는지 끝없이 ‘그날’로 돌아가며 떠난 이가 살아 돌아온 듯한 생생한 감각을 반복해서 경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는 ‘왜’ 보다는 ‘어떻게’를 질문하고 싶었어요. 떠난 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할 것인가. 남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잘 살아갈 것인가. 누군가는 “잊어야 네가 산다”고 쉽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인을 충분히 기억하자. 그래도 괜찮다. 혼자 겪지 않아도 되니, 우리 함께 잘 살아가 보자는 유쾌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 싶었어요.

 

지난 연말, 친구와 농담처럼 <아살돌>을 기획하면서 일단 시나리오를 써보고 한 2-3년 정도 뒤에는 정말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었는데 퀴어영화 만들기 워크샵 등 정말 좋은 기회로 1년도 되지 않아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어요. 5월부터 시나리오를 쓰고, 8월에 촬영하고, 9월에 편집 및 후반작업을 진행하며 숨 가쁘게 달려 10월에 처음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작업은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기에 가능했어요. 퀴어영화 만들기 워크숍 강사 및 수강생분들, 배우와 스탭분들, 첫 작품임에도 믿고 함께해주신 후원자분들과 비온뒤무지개재단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특히 이 모든 여정에 함께해준 나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감사를 전해요.

 

‘자살사별자’를 소재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다는 게 모든 과정에서 고민이 많이 되고 저에게도 쉽지 않은, 조심스러운 작업이었어요. 이 이야기가 세상에 그리고 또 다른 자살사별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이 정말 많았어요. 그럼에도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건 자살사별자들이 외롭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자살사별의 경험을 누군가와 나누고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더라고요. 자살사별자들이 세상에 많기야 하겠지만 내가 겪은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고 그게 서로에게 나눠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자살사별자 자조모임 이야기를 담은 고선규님의 <여섯 밤의 애도>를 읽고 목차만 보는데도 눈물이 줄줄 났어요. 각자의 상황과 경험은 달랐음에도 자살사별 그 이후 남겨진 이들이 느꼈던 감각과 사고가 꽤나 비슷하게 흘러가고, 제가 겪은 것과도 너무나 닮아있었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점에서 제가 굉장한 위로와 응원을 받았던 것 같아요. 아, 누군가도 나처럼 이렇게 외롭진 않을까. 거기서 좀 더 확신을 얻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나의 이야기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또 다른 자살사별자들에게 가닿아서 응원과 위로가 되었으면, 다들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상영회 등을 통해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많이 웃고, 울기도 하셨는데 GV 때 영화에서 느낀 따뜻함이나 묵직함 등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이 영화가 앞으로도 많은 곳에 가닿아서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퀴어, 자살사별자의 이야기를 통해 당사자들이 외롭지 않게, 고인을 애도함과 동시에 남은 사람의 삶을 더 고민할 수 있도록, 공론장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퀴어, 페미니스트, 자살사별자 친구들! 우리 모두모두 끝까지 행복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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