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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원

[2023 지역활동지원사업] 구례에도 무지개가 뜰까요?
사업명 jirisan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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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개코딱지기획단'을 소개해주세요.

 

무지개코딱지기획단입니다. 남원시 산내면으로 귀촌한 청년들이 시골에서 놀거리가 없어 퀴어축제를 열었습니다. 시골이라 퀴어란 단어를 모르실까봐 성다양성이라는 단어로 대체해서 산내성다양성축제를 기획했습니다. 축제를 처음 홍보할 때, 함께 기획할 친구들을 모아야하는데 성다양성축제 준비위원회 모집이라고 하면 너무 귀엽지 않고 대단하게 들려서 무지개코딱지 모집이라고 부르면서 기획단이 코딱지가 되었습니다. 무지개코딱지들은 핵심멤버가 한두명 있기는 했으나 해마다 구성원들과 규모가 바뀌는 아주 느슨한 조직입니다. 산내에서 축제를 3년간 이어오다, 코딱지들이 대거 구례로 이주하면서 올해는 구례에서 처음 축제를 열었습니다.

 

성다양성축제의 조금 특별한 점이라면 저희는 생태적인 축제를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장터에서도 비건, 유기농, 제철채소, 핸드메이드 제품 판매를 권고하고, 일회용품도 일절 사용하지 않습니다. 축제 후 쓰레기는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 장터 수익금과 축제후원금의 일부는 해마다 지리산권 개발반대 활동에 기부해왔습니다.

 

 

2. 신청하시게 된 구체적인 이유가 있나요? 

 

축제갈 때 마스크 써야 하나 싶었어요.” 그러나 구례 축제 참여자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례에서 처음 여는 성다양성축제는 확실히 산내와 달랐습니다. 애초에 산내 성다양성축제는 저희 놀자고 만든 거였습니다. 더 많은 퀴어를 만나고 싶다거나,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거나 하는 대단한 포부도 없었습니다. 산내 축제에선 다 이미 건너건너 얼굴을 아는 친구들이 놀러 왔습니다. 또 산내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마을이라서 그런지, 성다양성 축제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을에서 저희를 지지해주고 공간과 물품을 대여해주는 비빌 언덕도 많았습니다. 산내는 대체로 퀴어라고 하면 다 아셨던 것도 같습니다. 오히려 성다양성축제라는 이름이 더 낯설어서, 본의 아니게 위장용 이름처럼 들릴 지경이었습니다.

 

구례 성다양성축제는 조심성이 많아졌습니다. 산내라는 다 된 밥상에서 축제를 차리다 보니, 지역 퀴어축제 기획을 너무 물로 본 듯싶습니다. 구례로 축제 장소를 옮긴 것이 대단한 포부가 생겨서는 아니었습니다. 구례에서 놀거리를 또 찾아야 했을 뿐입니다. 뭣도 모르던 귀촌 1년 차에는 아예 상상력이 없어서 겁대가리가 없었는데요. 시골에선 한 명이 어떤 사실을 알면 곧 마을 전체가 다 알게 된다는 것과, 퀴어라고 하면 집주인이 쫓아낼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학습한 후, 저와 애인은 마을 길을 걸을 땐 손을 잡지 않습니다. 지역살이 햇수가 쌓이면서 퀴어가 더 살기 좋은 마을이면 좋겠다는 소망이 스멀스멀 생겼습니다. 어떤 퀴어한 수다를 지껄여도 척하면 척 알아듣던 산내 친구들이 없으니, 더 많은 퀴어 친구를 만나고 싶기도 했습니다

 

 

3. 진행하신 사업의 내용을 소개해주세요.

 

구례에서는 축제가 처음이다 보니, 이웃들에게 축제를 홍보할 때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저의 집주인은 매우 다정하고 사교적인 기독교인이십니다. 환경보호에도 퍽 관심이 있어, 제가 준비하는 행사를 요리조리 물으시다 지난 골프장 반대 문화제 땐 놀러 오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번엔 축제 준비로 정신이 쏙 빠져있자 집주인댁은 무슨 축제냐고 물으셨고, 저는 다양성 축제요라고 중요한 단어를 빼먹고 말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셔서 한숨 돌렸는데 다음날 또 오시더니 근데 뭐가 다양해요?”하고 또 물으셨습니다. “..., 나이, 인종, 뭐든 다양한...”하고 얼버무리니 무릎을 탁 치시며 아하! 풍습이나 종교도 다양하고요?”라며 해맑게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급하게 프라이빗 파티인 척 선을 그었고, 그날 전 집 마당에서 성다양성축제라고 적힌 대문짝만한 피켓을 칠할 때 집주인이 지나가실까 망을 봐야했습니다.

 

또 저는 젊은이들을 너무 납작하게 봐왔습니다. 제 얕은 경험상, 서울이나 산내나 또래들은 대부분 퀴어거나 앨라이였어서 제 머릿 속엔 젊은이=퀴어축제 짱좋아함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있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피어싱을 한 젊은 빡빡이 여성 분과 알게 됐는데 그분은 캐나다에서 오래 거주하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그분을 납작하게 보고 담주에 퀴어 축제 놀러오세요!”하며 방방 뛰었는데, 그분은 퀴어...가 뭐에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제 발음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퀴얼... 퀴이얼...”하고 몇 차례 다시 발음해주다가 결국 그가 퀴어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축제에 초대할 때 퀴어를 전혀 모르거나 알지만 정중히 거절했던 몇몇의 젊은 분들에 여러 차례 내심 놀랐습니다. 물론 제 머릿속 공식을 강화시킨 젊은 퀴어나 앨라이들이 정말 많아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번 축제 땐 무지개주간을 가졌습니다. 무지개주간 동안 구례 곳곳의 퀴어프렌들리한 공간들 약 14군데에 무지개깃발과 포스터를 설치했습니다. 이를 위해 무지개공간을 섭외했는데, 이는 코딱지들이 가게 사장님들과 친분이 있거나 평소 자주 다니며 안전하다고 느끼는 장소들을 우선으로 선정했습니다. 퀴어 판화, 퀴어 북큐레이션, 나의 퀴어이웃에게 남기는 쪽지코너, 지난 산내성다양성축제 사진전시, 무지개 실크스크린 굿즈 제작, 성중립화장실 안내 등의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그중 한 공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노년의 여성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무지개공간 섭외제안을 했습니다. 사장님은 저희를 산내에서 축제할 때부터 알았다며 흔쾌히 제안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사장님이 개인 사정이 생겨 가게를 한동안 아들에게 맡기셨는데, 아드님은 저희 어머니가 뭔지도 모르면서 섭외 제안을 허락하신 것 같다며 허락을 번복하셨습니다. 자주 가던 그 가게를 무지개공간으로 섭외를 못한 것이 몹시 아쉽던 찰나, 다행히 사장님이 직접 연락을 해오셔서 뒤늦게라도 무지개깃발을 걸 수 있었습니다.

 

축제 공간을 어디로 할지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희 축제는 퍼레이드도 인가 없는 논둑길을 걸어왔습니다. 저희끼리 안전하게 놀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지개코딱지들이 평소 자주 다니는 두루다살림장은 이미 산정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장터를 해왔고, 장터 기획쌤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도 저희 축제를 환영해주신 분들이셨습니다. 두루다살림장의 명성에 묻혀서 장터인 척 축제를 해버리자는 게 저희의 얄팍한 꾀였는데, 장터 기획쌤들은 아무래도 이장님께 허락을 받아야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저흰 또 어물쩡 다양성 축제라고 주절댈 심산이기도 했고, 속으론 성다양성축제라고 해도 못 알아들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장님은 찰떡같이 티비에서 보던 헐벗은 축제를 알아채셨고, 허락은 하겠지만 마을에서 시끄러운 말이 나오는 게 염려되니 떡이라도 돌리면 어떠냐고 해주셨습니다. 축제날 마을회관에 무지개떡을 돌린 이유였습니다. 물론 이장님의 허락도 두루다살림장 쌤들이 아니었다면 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4. 이 사업을 통해 얻은 것 또는 의미를 공유해주세요.

 

이번 축제를 준비하면서 확실히 세상 물정을 안 기분입니다. 나쁘게 보면 쫄은 거고, 좋게 보면 신중해진 겁니다. 근데 또 저만 이렇게 조심스러운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축제 참여자들은 모르는 얼굴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들도 저희 축제에는 처음 오셔서 그랬는지 조금은 수줍고 낯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산내 축제에선 공연을 볼 때 무조건 강제 스탠딩석이었습니다. 퍼레이드가 끝나서도 람천교가 부서져라 흔들어대는 친구들을 진정시켜 집에 보내는 게 매번 일이었습니다. 실로 퍼레이드 마지막곡은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였습니다. 구례 축제는 산내의 활기와는 또 다른 설렘이 있었습니다. 올해 피날레는 퍼레이드가 아닌 강강술래로 했는데, 그게 올해 참여자들 텐션에 딱 맞아 기쁘기도 했습니다. 강강술래 가락에 맞춰 손잡고 돌다 보면 고요하고 부드럽게 모두 하나가 되었고, 우리만큼 둥글게 차오른 달님을 다들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세상 물정을 알고 나니 더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산내라는 유일무이한 동네도 기적이었음을 새삼 느끼고, 올해 구례 축제를 도와주던 새로운 이웃들의 다정함도 기적이고, 벽장에서 나와 축제에 놀러와 준 참여자들도 기적이고, 아무 혐오세력 없이 안전하게 축제를 마친 것도 기적이고, 축제날 달이 밝은 것마저 기적이었습니다. 글이 길었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일일이 헤아리지 못하는 친애하는 존재들이, 내내 사랑스럽고 퀴어하길 바랍니다. 나무마고할미불.

 

5. 활동 사진이나 간단한 소감을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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