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후기

[2015 이창국기금 활동가생기충전기금 결과보고서] 활동가 김민수님의 후기입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 여러분께

어떤 말로 활동보고서를 시작해야 할 지 몰라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습니다. 이틀 만에 써서 낸 기획서를 덜컥 선정해 주시고, 제가 일본과 대만에서의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신 데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섣불리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서만 반짝이는 이 화면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기에 어렵게 운을 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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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해주신 것과 같이 저는 해외의 Pride Parade를 다녀올 목적으로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이창국 활동가 생기 충전기금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신청한 대로, 10월 초 오사카에서 열리는 Kansai Rainbow Festa 10월 말에 열리는 대만의 Taiwan LGBT Pride에 다녀왔습니다. 조정된 금액에 맞춰서 해외에 다녀올 여정을 조율하느라 개인적으로 조금 무리를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고심 끝에 두 나라 다 다녀오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고 비행기 예약을 마쳤을 때에는 뛸 듯이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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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왔던 여정에 대해서 각각 짧게 이야기를 드릴께요. 일본의 경우 몇 번이나 다녀왔던 곳의 일정이었던 지라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행사가 작년과 같은 곳에서 또다시 열렸기도 했고 말도 통했기 때문에 여행의 느낌 보다는 오히려 짧게 소풍 다녀 온 기분이었어요. 10회차를 맞이했던 간사이 레인보우 페스타는 작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줬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해 보수적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적인 분위기를 반영해서 다소 조용하게 치러졌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굉장히 활기차고 발랄하다 못해 주변마저 들썩이게 하는 행사가 되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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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간파레(이 행사에 대한 일본에서 통용되고 있는 줄임말입니다)의 퍼레이드 참여 인수는 905, 행사장 방문 인수는 7천여명이었다고 해요. 일본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자긍심 행진임에도 불구하고 도쿄와의 격차는 매우 큰 편입니다만, 아마 내년에는 처음으로 천명이 넘는 사람이 함께하는 행사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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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퍼레이드는 첫 참가였습니다. 말이 통하고 익숙한 동네를 다녔던 일본과는 다르게 이쪽은 말도 통하지 않고 한번도 가 보지 않은 낯선 나라여서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현지에서 유심 칩을 구매할 목적으로 로밍해 가지 않았던 하루동안은 인터넷을 쓸 수 없단 걸 망각하여 호스텔까지 가는 길을 잃어버려 해메야 했기도 하고요. 그 덕분에 아 내가 외국에서 여행이란 걸 하고 있구나 하는 기분은 제대로 났지만 말이에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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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관광도 하면서 이틀이란 시간을 좌충우돌 얼렁뚱땅 우여곡절로 채우고, 퍼레이드가 열리는 토요일, 총통부 앞 카이커다란 대도로 나왔을 때는 눈 앞에 펼쳐진 그 광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들어 왔던 ‘8만 여명의 참가자,’ ‘아시아의 최대 규모란 수식어를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이, 엄청, 정말,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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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은 LGBTI를 위한 국제 연합인 ILGA Asia Conference나 후에 설명드릴 Hand in Hand에 참여하기 위해 온 활동가와 함께 퍼레이드를 돌았습니다. 30분은 정말 설렘과 흥분에 겨워서 환희의 블루스를 추다가 너무나도 많은 사람에 치여서, 그리고 행렬의 더딘 행진으로 인하여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어느 순간엔가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본디 참가 목적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완주에만 목적을 두고 걸었다고 합니다….. 지쳐버린 저와는 대조적으로 장장 3시간에 이르는 퍼레이드를 끝까지 방방 뛰어다니고 춤추며 소리지르는 분들을 보며 와아무리 자긍심 버프를 받았다고 한단들 저렇게까지 벅차질 수 있단 말인가싶더군요. 종태원 상위 5%의 끼순이와 벅참을 자부했던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넓디 넓은 국제 무대에서는 어디까지나 수련이 필요한 몸에 불과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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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에서는 아시아 성소수자 합창단 연합 네트워크 Proud Voices Hand in Hand 합동 공연 또한 예정대로 함께 관람하고 왔어요. 퍼레이드의 다음날이었던 이 행사에서는 각국에서 초청받은 성소수자 합창단의 특색있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답니다. 지보이스와 아는 언니들의 공연 때에도 환호성 한마디를 보태기도 했고요 ㅋㅅㅋ (이쪽은 아쉽게도 따로 사진을 남겨놓은 게 없네요 ㅠㅜ)


 이번 여정은 성소수자와 연대할 수 있는 다른 인권적인 이슈에 대해서도 함께 고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만난 단체이지만, 일본 간사이 지방에는 청각 장애인 성소수자들을 위한 모임인 L*Sign(러브사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행사 당일,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를 포함한 일본어 수화 클래스를 열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대만의 시먼딩 홍루 뒷편의 게이 디스트릭트에서는 조용하지만 그 어느 그룹보다 분주하게 손이 움직이던 베어 무리가 있었습니다. 대만에서의 청각장애인 성소수자들이었어요. 오픈된 거리였기에 볼 수 있었던 광경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나와서 활동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는 것도 굉장한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조직적인 연대가 가시화되지도 않았고, 아직도 소수자에 대한 이중적인 차별과 편견이 남아있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함께, 제 안에 우아한 모습으로 포장되어 발견하지 못한 채로 존재하고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이 옷을 벗고 올라와 순간 부끄러워졌습니다.


 언젠가 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께서 제게 해주신 말이 기억납니다.

다른 여러 현장들을 이렇게 기록해주시는 거 아주 멋지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사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감사하다는 마음은 들면서도 어딘가는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어떠한 무게감이나 책임을 저 자신으로부터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응원해주시지만, 사진을 찍는 건 어떠한 사명감에 비롯한 행동이 아니라, 20살 끝자락부터 해 왔던 취미 생활의 연장선에 불과한, 어디까지나 제가 즐기려고 했던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퀴어문화축제에서 공식촬영역할을 맡게 되고, 다른 여러 투쟁의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개인전시 프로젝트로 성소수자 사진전을 하게 되면서, 점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부분이 변해갔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기금에 덜컥 선정이 되어 돈까지 받아버렸으니 누군가로부터 활동가로 인정을 받고 빼도 박도 못하는 아이덴티티가 생겼네요. (웃음)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찍었던 사진들을 돌아보며 개인적인 꿈도 생기게 되었어요. 제 사진으로 담긴 한국의 퀴어 문화축제 사진집을 내 보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전세계에서 열리는 Pride Parade를 테마로 한 세계일주를 다녀와서, 그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로 여행기 책을 써보거나 사진집을 내보는 것과 같은 단/장기적인 인생 목표를 그려보게 되었어요. (, 그러려면 우선 돈부터 모으긴 해야겠네요… ^ㅡㅠ)


두 여정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앨범에 담아 함께 보내드립니다.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들 중 30장과 대만에서 찍은 사진들 중 50장을 담았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단 생각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습니다. 활동보고서의부록이라고 해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성 소수자 인권운동과 관련해 국내의 여러 행사사진들과 더불어 해외의 pride parade를 소개하는 개인전시 프로젝트, <김민수의 퀴어한 사진첩> 전시회 굿즈 용도로 만들었던 엽서 세트 또한 함께 보내드립니다. 올해 열렸던 퀴어문화축제,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사진도 함께 있어요. 엽서는 비온뒤 무지개 재단의 부설기관인 한국 퀴어 아카이브 퀴어락에 기증하고자 합니다. 변변찮은 물품이지만 받아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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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여행이자 기록 활동의 일환이었던 저의 프로젝트를 지원해주셔셔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가들이 해당 기금을 통한 지원을 받고 더욱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질 수 있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보고서를 이만 줄입니다


. 변덕스런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며.

 

-       감사와 응원을 담아.

김민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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