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진행된 단체역량강화사업은 작년에 진행되었던 성적소수자인권운동단체 현황조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의 현황조사를 통하여 여러 성적소수자 인권운동단체들이 활동가 교육과 안정적 운영비 마련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파악하였습니다. 이후 재단에서는 단체역량강화사업의 기금을 조성하여 활동가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비나 워크샵 진행비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는 단체 활동가의 활동비 지원을 신청하였습니다. 지원금액의 크기와 상관없이 조각보는 이번 지원이 의미 있는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하였고, 그 고민의 결과를 아래의 후기와 같이 남겨주었습니다.
각 단체들마다 다양한 사정들이 있지요. 하지만 ‘단체의 역량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지, 지속가능한 활동은 가능할 것인지.’ 등의 고민은 공통적으로 갖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조각보의 글은 한 번쯤 각자의 단체의 현실에 비추어 생각해볼 지점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후기를 소개하기에 앞서, 기금의 취지를 깊게 생각하고 그 내용을 공유해 주신 조각보 활동가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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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이하 '조각보')는 비온뒤무지개재단으로부터 '단체의 역량 강화 및 활동 지속성 확보를 위한 활동 지원비 지원 사업'라는 사업명으로 2019년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간 <단체역량강화사업>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각보는 이 기금을 통하여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통상적인 외부지원기금은 연구용역, 제작, 출판, 행사 진행, 프로젝트 등 매우 구체적인 사업이 있고, 재단 측에서 그 사업에 대해 기금 지원을 하였을 때 구체적인 성과물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손에 잡히는 책자나 굿즈, 영상물이나 공연, 물리적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회나 행사,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는 기록사진과 영상이 '기금의 성과물'로 제출되곤 합니다.
조각보가 이번에 비온뒤무지개재단으로부터 지원받은 이번 기금은 여타의 기금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습니다. 조각보는 말 그대로 '단체역량강화'를 위하여 상근 활동가와 사업 담당자의 인건비 및 활동 지원비로 지원받은 기금을 전액 사용하겠다는 취지로 신청을 하였고,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는 그에 따라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물리적인 결과물을 하나도 보여줄 수 없는 사업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한편으로는 '참으로 비온뒤무지개재단다운 대범한 지원이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금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는 '이 기금이 단순 인건비 보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의미 있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걸까?'를 계속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다수의 작은 비영리 활동단체들이 내부 구성원의 헌신과 희생에 의존하여 활동을 지속하곤 합니다. 소위 '활동가의 일상을 갈아 넣어 단체를 유지'한다고들 자조적으로 말하곤 하지요. 그나마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 하더라도 부족한 재정과 많지 않은 인력을 감수하고 어떤 행사는, 캠페인은, 인쇄물은, 토론회는 기획되곤 합니다. 인건비와 섭외비를 깎아서, 친한 지인을 무급 자원활동가로 데려와서 유지되기도 합니다.
부끄럽게도 조각보 역시 이러한 모순과 한계에서 아주 자유롭지만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작된 고민이 이번 기금을 신청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또 기금을 지원받고 나서도 이어지는 고민의 타래가 되었습니다.
조각보는 이번 기금의 지원을 받아서, 반상근 활동가를 한 명 더 충원하여 적은 금액이나마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었습니다. 조각보의 주요 사업들인 '트랜스젠더 지지모임 TGG'와 '문집 <조각보자기>'를 실질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활동가들에게도 활동 비용을 지원할 수 있었고, 나아가 이전에는 시도하지 못 하였던, 단체 외부의 재능 많은 이들을 <조각보자기>의 편집위원으로 섭외하여 더욱 다양한 관점을 담고서도 전문성을 수반하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간의 상근자 인건비를 보조해주었다거나 주요 사업의 담당자들의 활동비를 보전해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영리 활동단체로서 (금액의 크기를 떠나) 서로의 활동의 가치를 단체 구성원들이 인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여러 번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단체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여전히 걱정하기도 합니다. 현재진행형인 이 고민들은 당연히 재정적 안정이라는 물적 기반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6개월 사이에 역량이 늘었고 그에 따라 활동의 영역도 확장되었으며, 반드시 활동을 펼치고픈 핵심 이슈들도 구체적인 것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물적 기반의 부족으로 어렵게 쌓아온 고민들이 다시 위축되고, 취사선택해야 하며, 개개인의 희생과 능력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으로 복귀할 것이 여전히 걱정거리로 남습니다. 한번 시작한 걸음에서 뒷걸음치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제자리 걸음이 아니라 더 큰 상처로 개개인이 짊어질 또 다른 심적 부담이 될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어쩌면 더 큰 보폭으로 나가지 못 하는 이유는,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뒷걸음질의 상처를 견딜 '단체의 역량'이 충분한가에 대한 단체로서의 확신이 아직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에 앞으로 더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온다면, 이와 같은 재정적 지원의 기회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일 거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라는 부분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나아가, 조각보는 금전적인 지원에 더불어 지난 6개월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더욱 의미 있는 질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체의 역량'이 대체 무엇인가?', '역량을 강화한다는 의미는 무엇이고, 그 경험은 어떻게 단체 내에서 공유할 수 있는가?', '역량을 양적으로 더 키우고, 또 흩어지지 않게 품어 안고, 약해질 수도 있는 위기에 어떻게 버티는가?'
등등의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각자의 개성과 관심사가 뚜렷한 개개인의 활동가들이 모여 있으면서 동시에 한 단체로 이루어진 집단에게 활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멈추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힘을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 트랜스젠더로서의 지속가능한 삶을 주요 가치로 삼습니다.
- 젠더와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페미니즘적 활동을 하려 합니다.
- 트랜스젠더 인권을 향상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칠 플랫폼이 되고자 합니다.
위 문장들은 홈페이지에도 명시되어 있는 조각보의 활동 가치입니다. '트랜스젠더로서의 지속가능한 삶'은 조각보에게 무척 중요한 가치입니다. '트랜스젠더로서의 지속가능한 삶'이란 말에는 "성별이분법적인 사회에서 트랜스혐오에 맞서 싸우며 살아가는 모두의 삶 자체가 그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문구를 차용해봅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로서의 지속가능한 활동과 그에 필요한 역량의 강화'... 이 새로운 가치를 이번 <단체역량강화사업>의 기금을 지원받으면서 마음 깊이 담아가게 되었습니다.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 자체로 훌륭한 활동이다"라는 가치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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