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학술
2018 제1회 전주퀴어문화축제 후기를 올립니다.
글쓴이 디쟌(전주퀴어문화축제 기획단원)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그 길 위에 무지개다리를 놓다.”
지방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혐오세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커뮤니티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전라북도에 거주하고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당당히 드러내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자신의 정체성이 부끄럽지 않은, 자긍심의 날은 꼭 필요했다. 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던 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한 성소수자 관련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던 우리 지역의 성소수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였고 차별과 혐오에 저항할 힘을 얻는 축제를 꾸려나가고 싶었다. 무엇보다 전주퀴어문화축제는 우리가 항상 친구들이랑 놀러가거나 학교에 가면서 또는 회사에 출근하면서 지나갔던 그 길 위에 무지개다리를 놓고 싶었다.
“무지개다리를 놓으려면, 혼자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도와줄게!”
전주퀴어문화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성소수자 당사자들만의 힘으로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열정과 상상력은 충분했지만 현실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지역 사회 내의 시민단체와 연대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래서 그 상상력과 우리의 열정을 보여주었고 지역 사회 내 민주주의의 발전과 평등을 위하여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 정당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전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각 단체는 마치 “너희가 바라는 무지개다리를 놓기 위해서는 혼자서 힘들 테니 우리가 도와줄게!”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또한 전주퀴어문화축제의 지속적인 개최뿐만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한 지역사회 만들기와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위해 함께할 것을 우리는 약속했다. 이를 보여주듯이 3월17일에 진행된 성소수자 부모모임 토크쇼와 3월 20일 민주노총에서 준비한 런던프라이드 상영회, 3월 23일에는 익산에서 진행된 은하선 작가의 “투명망토를 쓴 성소수자”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천년의 땅 위에 무지개가 뜬다.”
위 슬로건처럼, 천년의 땅위에 무지개가 뜨는 곳은 어디일까. 전주의 특색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한옥마을이었고 그 와 가장 인접한 곳인 풍남문 앞 광장이었다. 물론 축제를 하는 장소로 상당히 좁은 공간이었지만 이미 정해진 이상 우리를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부스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을 측정하기 위해, 기획단원들은 비가 오던 날 그 비를 맞으며 실측을 했고 좁은 공간을 더욱 활용하기 위해 이미 있던 조형물을 이용하여 무대와 휴식공간을 마련했다.
“전주는 눈 온 뒤 맑음. 그리고 다시 눈”
4월 6일부터 전주의 날씨는 심상치 않았다. 비가 오더니 기온이 뚝 떨어지고, 기어코 행사 당일 새벽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기까지 했다. 아침 일찍부터 기획단은 차근차근 준비를 했지만 바람도 많이 부는 날씨로 순탄치 않았다. 결국, 설치된 부스 2동이 통째로 파손되고 말았다. 결국 추가 파손을 막기 위해 설치하기로 했던 가림막도 모두 포기해야 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대형 현수막도 걸지 못하고 무대 현수막도 구멍을 뚫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기획단 중에는 이런 모습을 보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은 조금 잦아지고 맑아오는 모습을 보고 그 눈물을 걷을 수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고 순탄하게 바람을 맞으며 행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몇 시간 뒤 다시 눈이 내렸다는 것은 오히려 하늘에서 도움은 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며, 한국에서 최초로 눈 오는 날 퀴어문화축제를 진행한 곳은 전주퀴어문화축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기에 존재한다.”
광역시도 아닌 일반시에서 열리는 축제라 전주퀴어문화축제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걱정했지만, 부스 행사가시작한 이후로는 많은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30개의 단체에서 부스에 참여하여 다양한 컨텐츠를 준비하여 진행하였고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무지개 물결을 만들었다. 놀랐던 장면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혐오세력이 적었다는 점이다. 이후, 많은 참가자들이 전주퀴어문화축제는 30년 뒤에 개최될 퀴어문화축제 같다는 평을 남겨주셨다. 우리의 땅에서 우리 자신을 더욱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또한 전주퀴어문화축제 무대행사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고 관객들의 호응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무지개다리가 펼쳐진 한옥마을로”
전주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는 레인보우 플래그를 선두로 출발하여 민주노총 방송차량 3대와 함께 진행되었다. 퍼레이드 경로는 풍남문 광장을 시작으로 충경로 사거리, 전주시청, 전북지방병무청, 한옥마을을 통과하여 풍남문 광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전주퀴어문화축제의 방송차량은 각 방송차량 별로 컨셉이 있었다. 1호차는“90’00’(부제: 특이점이 오기 시작한 퀴퍼)”, 2호차는 “싱어송퍼레이더(부제: 누가 얘한테 트럭 한 대만 줘라)” 3호차는 “착즙: 퀴어아이돌”이었다. 그렇게 각 차량이 출발하고 신나게 가던 중 전주시청 부근에 다다랐을 때, 전주퀴어문화축제 측에서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하여, 고공농성 중이신 택시노동자에게 연대의 함성을 보냈기도 하였고, 중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손 키스를 보내기도 하고, 직접 퍼레이드행렬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또한 퍼레이드 행렬은 한옥마을 입구에 다다라 완성된 무지개다리를 보여주었고 우리의 깃발이 한옥마을 안을 가득 메웠고 총 2000명의 사람들이 퍼레이드 행렬에 참여하여 함께하고 자긍심을 느꼈다.
“일상에서도 무지개가 뜨는 그 날까지”
전주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가 가시화되기 어려운 지역 사회에서 준비하는 축제이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전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비온뒤무지개재단을 비롯하여 연대단체를 비롯한 참가자 분들의 지원과 응원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고 지역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퍼레이드를 마치고, 풍남문 광장에 모여 다 함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세계”를 불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퍼레이드 깃발과 더불어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전주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지역의 성소수자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차별과 혐오에 저항할 힘을 얻었다. 물론 이 자리에 꼭 오고 싶었지만 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같이 함께하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분들까지 전주퀴어문화축제를 비롯한 성소수자행사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일상에서도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그날까지 전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진: 김민수, 제너럴찰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