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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주간경향> 정부 담당부서도 없는 ‘성소수자’
2016-07-06 오후 17:31:33

원본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607041559361&code=115


ㆍ무지개재단, 법무부 상대 사단법인 등록 승소… 2년 반 만에 권리 찾아

“저희는 담당 부서가 아닙니다.”

2년 반이 넘도록 비온뒤무지개재단(이하 무지개재단)은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지 못하고 있다. 무지개재단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뒷받침할 목적으로 2014년 1월 창립했다. 6월 30일 서울 마포구 무지개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한채윤 상임이사(44)와 장서연 이사(38)는 재단을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기 위해 서울시, 국가인권위, 법무부를 오갔다. 그때마다 담당 공무원들은 재단 이사들에게 ‘담당 부처가 아니’라는 취지의 말만 되풀이했다.

재단 이사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사단법인 설립 신청을 냈던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6월 24일, 서울행정법원은 판결을 내렸다. 무지개재단의 승리였다. 성소수자 단체로는 처음으로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의 길이 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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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무지개재단의 한채윤 상임이사(왼쪽)와 장서연 이사 / 백철 기자


서울시·인권위·법무부 “담당 아니다” 회피
재단의 소송대리인이기도 했던 장 이사는 “법무부는 법적으로 인권옹호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게 돼 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법무부가 항소하면 그만큼 사단법인 등록은 뒤로 미뤄진다. 무지개재단은 확정판결을 받을 때까지 소송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 기관과 소송전까지 불사할 정도로 사단법인 등록이 이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상임이사는 “사단법인 등록이 이뤄진다면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의 결사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될 것”이라면서도 “사단법인을 하건 하지 않건 우리 활동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고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사단법인은 재단 활동에 이익이 된다기보다는 기부자들에게 혜택을 드리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이다. 사단법인이 되면 개인이나 기업 기부자들에게 소득공제 영수증을 떼줄 수 있다. 또한 사단법인이 된다는 것은 재정 운용에 있어서 국가의 관리·감독을 받겠다는 의미다. 그만큼 기부자들도 저희를 믿고 기부해주실 수 있다. 기부문화 독려 차원에서도 사단법인이 돼야 한다.”

무지개재단은 기본적으로 성소수자 운동을 지원하는 재단이다. 행정소송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6월까지 500여명이 1억4000만원 가까운 돈을 기부했다. 한 상임이사는 기부를 통해 여러 가지 인권문제 현실을 개선시킬 수 있다며 재단을 통해 ‘편견 없는 기부문화’를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기부는 주로 ‘불우이웃돕기’ 중심이었다. 인권문제, 특히나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기부라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인권 향상을 위해선 기금이 필요하고, 무지개재단과 같은 활동을 위해서도 편견 없는 기부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무지개재단은 자신들이 받은 기부금으로 퀴어문화축제 등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레즈비언들의 팟캐스트 방송 제작비를 보탰다. 성소수자들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성소수자들이 마음놓고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는 것도 재단의 몫이다. 무지개재단이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중심 기지 역할을 맡아가는 단계다.

사단법인 돼야 기부자 소득공제 가능
처음부터 재단은 사단법인으로 등록할 생각이었다. 장 이사는 “헌법에 모든 국민은 ‘결사의 자유’가 있다고 되어 있고, 성소수자 사단법인을 국가가 막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무지개재단은 창립 직후 서울시에 사단법인 설립을 신청했다. 일반적으로 시민단체는 일단 지방자치단체에 법인 설립을 한 뒤, 활동을 전국 단위로 넓히면서 행정부에 법인 설립 신청을 한다는 게 재단 이사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난색을 표하며 신청을 접수하지 않았고, 그다음 찾아간 국가인권위 역시 “상임위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접수를 거부했다고 무지개재단은 밝혔다.

재단은 다시 서울시를 찾았다. 이번엔 ‘서류 뺑뺑이’가 시작됐다. 재단은 처음에 행정과에 법인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다. 행정과는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서류를 여성정책과에 보냈다. 한 상임이사는 “처음엔 성소수자 인권을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인권과가 있으니 거길 찾아가라는 거다. 그런데 인권과에서는 ‘우리에겐 법인 설립 권한이 없다’고 말하더라. 성소수자 문제가 현실화된 지 하루이틀이 아닌데 담당 부서가 불명확하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재단이 법인 설립을 위해 전전하는 동안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갔다. 2014년 11월 10일, 재단은 법무부에 설립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법무부의 답변을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날이 계속됐다. 법무부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에 의하면 법무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20일 이내’에 심사해 결과를 통지하게 돼 있다.

장 이사는 “20일이 지나도 되면 된다, 아니면 아니다라는 말조차도 듣지 못했다. 5개월 만인 지난해 4월에 겨우 ‘법무부의 법인 설립 허가 대상 단체와 성격이 상이하다’는 취지의 공문을 받았다”며 “무지개재단의 설립 목적이 ‘사단법인 등록’도 아닌데, 이 일을 가지고 소송을 해서 판결문까지 받아야 하는 게 현재 한국 성소수자 인권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무지개재단 이사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 외에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성소수자 인권문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 중 하나가 성소수자들의 건강권이다. 한 상임이사는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혐오가 그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동성커플의 경우 큰 수술이 잡혔을 때 상대방이 환자의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중요한 수술에 앞서서 결정권이 전적으로 의사에게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우 병원만 가면 의사가 에이즈에 대해 지나치게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특히, 성전환 중인 트랜스젠더의 건강문제에 대한 국내 의료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가 많지 않다.”

장 이사는 “사실 법무부나 국가인권위 등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면 나서서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법인 등록을 이런저런 핑계로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 이사는 “겉으로는 절차를 말하지만 사실은 성소수자가 그냥 싫었던 건 아닐까”라며 재판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1차 공판부터 법무부는 자신들이 성소수자 문제의 주무관청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판사도 답답했는지 법무부에 ‘어디가 주무관청이냐’고 계속 물었지만 법무부는 끝내 답하지 못했다.”


서울행정법원은 판결문에서 “법무부가 이 사건 단체(무지개재단)의 설립 허가를 담당할 적법한 주무관청을 밝히고 있지 않다”며 “법무부는 이 사건 단체의 설립 허가를 담당할 주무관청의 하나로 보인다”고 밝혔다.

만약 법무부가 법원의 판결을 승복하지 않고 항소하게 된다면, 성소수자 사단법인 설립의 꿈은 한참 더 미뤄질 수도 있다. 장서윤 이사는 법무부의 항소 없이 하루빨리 사단법인 등록이 완료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판결문에도 나온 것처럼 2012년에 성소수자 차별과 시정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준 곳이 법무부다. 차별금지법 주무부서도 바로 법무부다. 정부는 유엔에서는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취지의 결의문에 찬성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대외적인 입장과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법무부가 이번 사건에 대해 항소한다면 ‘시간끌기’ 이상의 의미는 없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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