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빛깔 정체성을 응원해’ 길벗체로 연대 손길 내민 창작자들

[짬] 시각예술 활동가 제람·서체디자이너 숲

 

전문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962992.html

 

지난 1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 전시회에서 제람(맨 오른쪽) 시각예술활동가와 숲(왼쪽 둘째) 서체디자이너가 비온뒤무지개재단,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들과 함께했다. 사진 제람 제공

지난 1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 전시회에서 제람(맨 오른쪽) 시각예술활동가와 숲(왼쪽 둘째) 서체디자이너가 비온뒤무지개재단,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들과 함께했다. 사진 제람 제공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보라.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6가지색 무지개가 한글 서체로 재탄생했다. 지난 20일 공식 출시된 한글 최초 완성형 색상 서체 ‘길벗체’ 얘기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이날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무상으로 길벗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길벗체는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인 길버트 베이커 사후에 그를 기리며 만든 영문서체 ‘길버트체’의 뜻과 꼴을 계승해 무지개색으로 구성해, 깃발이 흘러내리는 느낌의 모양을 반영했다. 그동안 한글 색상 서체를 만드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길벗체처럼 자음·모음·받침을 조합한 모든 획에 색상을 적용한 사례는 없었다. ‘완성형’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유다.

 

6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개발에 참여한 시각예술 활동가 제람(강영훈)은 21일 <한겨레>에 “서체에도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고, 가치나 의미를 담으면 그 자체로 정체성을 지닌 하나의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무상으로 배포한 이유는 그만큼 소중해서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가 길버트 베이커 기려 만든

영문서체 ‘길버트체’ 계승해 무지개색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보라

올초 ‘차별과 혐오를 넘어~’ 전시 계기

7명 개발팀·재단·474명 공동제작자

한글 완성형 3천자 20일부터 무료 공개

 

지난 20일 공식 출시된 길벗체의 여러 유형. 사진 제람 제공

지난 20일 공식 출시된 길벗체의 여러 유형. 사진 제람 제공

 

길벗체의 탄생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람은 서체 디자이너 숲(배성우), 저널리스트 라파엘 라시드와 함께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 전시를 준비하며,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무지개 색상을 활용한 서체 약 100글자를 만들었다. 제람은 “2018∼19년 2년 간 한국에서 성소수자가 종교적인 이유로 혐오와 차별을 경험한 사례를 보도한 기사를 모아 시각적으로 정리한 전시였다. 길벗체는 그런 전시 성격을 잘 드러내고 관람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서체였다”고 소개했다. “그때 전시 관람객들에게 언제 출시되는지 문의를 많이 받아 아예 제작해보기로 결심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지난 1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 전시를 함께 연 뒤 ‘길벗체’ 제작에 나선 제람(왼쪽) 시각예술활동가와 숲(오른쪽) 서체디자이너. 사진 제람 제공

지난 1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 전시를 함께 연 뒤 ‘길벗체’ 제작에 나선 제람(왼쪽) 시각예술활동가와 숲(오른쪽) 서체디자이너. 사진 제람 제공

 

문제는 색상을 일일이 조합해 만들어야 하는 서체의 양이 무려 3천자나 된다는 것. 제람은 “초·중·종성이 모두 결합한 완성형 한글 서체는 최소 3천자 이상 만들어야 하는 데다 획이 교차하는 지점의 색깔을 추가하다 보니 한 글자에 색상이 최대 11개까지 들어갔다”며 “모든 획에 색상을 넣은 전례가 없어 마땅한 기술이나 시스템이 부재했고,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사용하는 등 고된 제작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한두 명의 힘으론 불가능했다. 제람과 숲 그리고 5명이 더 모여 ‘길벗체 개발팀’을 꾸리고 본격적인 작업에 나선 건 5월이었다. 길벗체의 가치와 의의에 공감한 비온뒤무지개재단이 개발 비용 일부를 지원했고, 나머지는 후원을 받았다. 제람은 후원자들이 ‘공동제작자’라며 “길벗체는 비온뒤무지개재단과 474명의 공동제작자가 만든 서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은 제작 과정에서 후원자의 이름을 길벗체로 제작해 선물했는데, 이때 이름에 넣은 색상 조합을 뿌리로 삼아 추가 글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완성해 나갔다. “예를 들어 ‘박’씨 성의 후원자 이름을 길벗체로 만들었다면, 그 글자를 기반으로 ‘반’ ‘발’ ‘밤’ 등 다른 글자의 색상을 정해 나갔죠.”

 

지난 1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 전시회에서 만난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제람 시각예술활동가, 캔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신필규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왼쪽부터). 사진 제람 제공

지난 1월 <차별과 혐오를 넘어 자부심으로!> 전시회에서 만난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제람 시각예술활동가, 캔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신필규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왼쪽부터). 사진 제람 제공

 

개발팀은 제작 과정에서 재단과 함께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연대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에 나선 국회의원 10명의 이름을 길벗체로 제작해 보냈고, 장혜영·류호정·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각자 소셜네트워크(SNS)에 인증사진을 올려주기도 했다. 지난달 ‘국제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을 기념해 홍대입구역에 게시한 광고가 훼손됐을 때도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란 광고 문구를 길벗체로 제작해 연대 의사를 전했다.

 

길벗체의 특징은 하나 더 있다. 남성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XX충’이란 단어를 쓰면 잿빛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삶과 존재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의미를 담은” 길벗체가 제작 의도에 맞게 사용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제람은 “처음 배포되는 길벗체 1.0 버전’에서는 이 한 단어만 적용되지만 앞으로 구현할 수 없는 표현 목록을 늘려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길벗체의 가족서체도 나올 예정이다. 제람은 “오는 11월에는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길벗체, 내년 1월에는 ‘바이섹슈얼’(양성애자) 길벗체도 출시된다”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현하는 서체로 활용하거나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지지할 때 경쾌하고 밝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체 제작에 관한 정보, 제작 과정에서 얻은 경험까지 정리해 모두 무상으로 공개할 예정이에요. 다른 언어로 길버트-길벗체의 뜻을 잇는 서체를 개발하는 이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공동제작자들에게도 감사하다고 꼭 덧붙이고 싶어요. 길벗체로 만든 이름을 에스엔에스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는 걸 보면서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경험했고, 힘이 많이 됐거든요.”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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