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성적소수자를 주제로 한 비주얼 미디어 아카이브 전시 ‘편견을 넘어 자긍심으로(Pride Over Prejudice)’에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서체가 등장했습니다.
성적소수자를 상징하는 여섯 색 무지개가 담긴 영문서체 길버트체의 한글판인 ‘길벗체’였습니다.
아직 서체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부심·성소수자와 같은 몇몇 단어들이 길벗체로 표현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서체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책임개발자 숲: “언젠가 길벗체를 완성해 많은 사람들이 쓸 수 있다면 좋겠어요.”
(출처: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
하지만 그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소문자를 포함해 100자 안팎의 문자만 있으면 실생활에서 사용이 가능한 영문 알파벳과는 달리,
한글의 경우 완성형으로 쓰려면 최소 3,000자 이상의 문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최대 11개의 색상을 한 글자에 담는 길벗체는 3,000자의 글자가 통일감 있게 보일 수 있도록
색상 조합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만들어 적용하며 부단히 실험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오랫동안 전면 색상을 적용한 완성형 한글 서체가 발표된 일이 없었습니다.
서체의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노력만큼 큰 비용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개발에 필요한 프로그램 구입비와 7명의 개발자에게 지급할 인건비를 포함하면 최소한 1,500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비온뒤무지개재단은 길벗체 개발팀에게 300만 원의 착수금을 지원하고,
서체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나머지 1,200만 원의 비용을 모금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그리하여 2020년 5월, 비온뒤무지개재단과 7인의 길벗체 개발팀 숲(배성우)과 제람(강영훈), 에이미, 김수현, 김민정, 임혜은, 강주연은 협약을 맺고
길벗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안고 시작된 프로젝트는 길벗체의 가치와 의의에 공감한 많은 후원자분들의 참여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후원자들은 길벗체의 공동제작자가 되어 제작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길벗체의 공식 출시 전 서체를 먼저 사용하실 수 있는 <길벗체 스페셜 에디션>을 제공받았습니다.
길벗체로 쓴 자신의 이름을 받은 공동제작자들은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지지를 표현하고 길벗체 모금을 적극적으로 독려해주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길벗체 제작팀은 다양한 성적소수자 이슈에 연대하며 길벗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2020년 6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 82일의 모금 기간 동안 474명의 공동제작자가 길벗체 제작에 참여하였고, 총 26,949,000원의 개발비가 모였습니다.
그리고 2020년 9월 20일,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담은 한글 최초의 전면 색상 적용 완성형 서체 <길벗체>가 공식 출시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성원으로 길벗체 프로젝트는 종착지에 도착했지만, 길벗체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원자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 덕분에 길벗체 프로젝트는 목표한 금액을 초과할 수 있었고,
이에 보답하기 위해 비온뒤무지개재단과 길벗체 개발팀은 초과 모금된 개발비로 트랜스젠더와 양성애자 자긍심의 상징 색을 담은 서체를 각각 추가 개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길벗체의 제작 과정과 제작 원리, 길벗체 전체 문자가 담긴 길벗체 해례본을 제작하고, 한글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권에서도
자긍심의 서체가 만들어지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체 제작에 관한 정보와 제작 과정에서 얻은 경험까지 정리하여 공개할 예정입니다.
길벗체는 모든 이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는 마음을 서체에 담아 전하고자 합니다.
길벗체 프로젝트가 더욱 확장되고 발전되어 가는 여정에, 앞으로도 큰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