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이창국기금 활동가생기충전기금 결과보고서] 강현주님의 후기입니다

지원해주신 금액 덕분에 대만에 잘 다녀왔습니다. 인권활동을 시작한지 이제 갓 6년차가 되어가는 활동가로서 한 번도 활동을 통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본 것 같아요. 사실 이창국기금도 나보다 더 훌륭한 다른 활동가들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신청을 미루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받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그래서 이 기금을 받기 위해서 다른 활동가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면 또 좋지 않을까 싶어서 신청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4일동안 대만 퍼레이드 참가 및 여행을 신청했고, 처음으로 기금을 받아서 해외에 나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행사가 있으면 항상 데리고 다니는 커밋 개구리 인형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사진 위주로 보고서를 작성할텐데, 저 개구리 인형이 무엇인가 생각하시면 제 여행의 동반자라고 생각해주시고 즐겁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만을 갈 때에는 여러 가지 항공권이 있었지만 저는 대만 국적기인 에바항공을 택했습니다. 에바항공은 헬로키티 캐릭터로 꾸민다는 사실을 친구가 알려줬는데, 실제로 항공권을 발권해보니 키티가 가득하더라구요. 30만원 정도 소요되었고, 비슷한 가격대로는 타이항공과 캐세이퍼시픽이 있습니다. 타이항공의 경우 기내식을 채식(비건부터 페스코까지 모두 가능해요!)주의자의 경우 다양한 레벨로 나누어서 제공하니 채식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키티로 가득찬 에바항공 비행기 티켓, 기내 및 기내식

그림1에서 보실 수 있듯 심지어 기내식으로 제공하는 아이스크림에도 키티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대만식 식사를 달라고 했는데, 뭉근하게 익힌 고기와 삶은 야채와 밥이 주식이었고 과일샐러드, 김가루로 추측되는 야채가 들어간 빵과 초콜릿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항공권 신청할 때 이름을 잘못 기재했는데 밤 비행기여서 본사 전산이 닫힌 상태였는데 직원분께서 도장 찍어주셔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타오위엔 공항으로 입국했는데, 인천공항애서 타오위엔 공항까지는 약 두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타오위엔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 걸려서 타이베이 메인역에 내려서 숙소로 향했습니다. 제 숙소는 대만의 메인스트리트로 불리는 시먼딩에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방 자체는 창문이 없어서 한국의 모텔과 흡사한 구조였는데, 조식부페가 맛있고 다양해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약 새벽 1시정도 되었고 다음날이 퍼레이드였기 때문에 저는 다음 날을 기약했습니다.

퍼레이드 날이 되니 시먼딩 역 근처에 온 몸으로 퀴어함을 뽐내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숙소 근처의 작은 광장에도 큰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는 걸 봤을 때 소름이 쭉 돋아서, 나중에 서울에서 퍼레이드를 준비하게 되면 서울에서도 깃발을 걸고 싶었습니다. 10년 안에는 가능하겠죠

2. 대만 퍼레이드 사진


행사장 근처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휘날리는 가지각색 깃발들을 보면서 소름이 다시 쭉 돋았습니다. ‘퍼레이드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니고..뭐 별 거 있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행사장에 가보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척 설렜습니다. 이번에는 스태프가 아니라 참가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이니 참 좋더라고요.

첫 인상은 사실상 깃발이었습니다. 대만은 한자를 쓰는 나라라 그런지 세로로 된 깃발이 많은 것이 눈에 가장 먼저 띄었습니다. 그리고 부스가 생각보다 적어서 많이 놀랐습니다. 20개 남짓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개인 단위의 참가자들이 행렬에 많이 합류하는 서울 퍼레이드와 비교되는 점은, 개인 참가자의 경우여도 제각각 특이한 코스튬을 많이 하고 와서 놀라웠습니다. 5인 이상의 참가자들이 특이한 컨셉트의 옷을 맞춰 입고 온 것도 흥미로웠고요. 마침 할로윈과 겹쳐서 할로윈 컨셉트의 복장을 하고 온 사람들도 많아서 행렬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3. 대만 퍼레이드 사진


4. 대만 퍼레이드 행렬과 커밋


5. 대만 퍼레이드 행렬



사진 5의 왼쪽 윗부분의 사진에 있는 깃발은 대만 제1야당에서 나누어주는 깃발이었습니다. 당시 대만의 제 1야당은 동성결혼을 지지한다고 해요. 톤다운 된 레인보우 깃발이 너무 예뻐서 저도 하나 달라고 해서 받아 왔고, 제 연구실 책상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손 팻말을 많이 만들어 오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사진5에도 있지만 라엘리안 성소수자 모임도 나와서 왜인지 익숙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차량 음향 출력이 커서 음향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는데 대만은 작은 차량을 사람들이 많이 들고 오는데, 참가자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하는 차량인지 음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코스가 두 개였는데, 제가 돈 코스의 차량들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코스로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렬이 상당히 길었고, 대만의 메인 도로를 다 차단한 상태로 행사가 느긋하게 이루어지는 점도 부러웠습니다. 행렬이 어떤 형태인지 궁금해서 행렬의 맨 선두에 섰다가 잠깐 쉬고 나서 행렬의 역순으로 쭉 걸어가면서 행렬을 구경했습니다. 혐오세력이 없어서 사실 퍼레이드 팀의 음향이 그리 크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평화롭고 여유롭게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서울에서 혐오세력이 없을 시절에는 다른 이유로 항상 마음이 급했는데, 서울에서도 언젠가 메인 거리를 하루 종일 통제하고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면 참 좋겠죠.


6. 대만 퍼레이드 행렬

대만 퍼레이드 행렬에는 보다시피 세일러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스튬을 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사진을 같이 찍는 데에 거부감이 없으셨고 그래서 저도 즐겁게 퍼레이드를 할 수 있었습니다. 왼쪽 아래의 레인보우 깃발은 약간 메탈 느낌이 있는 비닐 소재로 만든 것인데 질감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실 한자로 된 팻말은 거의 다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 자리에 나와서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걷고 싶은 사람은 걷고,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서 같이 있는 저도 즐거웠습니다.


7. 스린 야시장


  

퍼레이드를 마치고 갑자기 야시장에 가보고 싶어서 스린 야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 있는 남대문시장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냥 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고..다만 차이점은 사람들이 놀 수 있는 작은 오락실 같은 가게들이 많아서 일본의 지역 축제날 느낌이었습니다. 관광객이 워낙 많아서 한국어도 들리고 일본어도 들리고 대만어도 들렸습니다. 취두부 냄새에 일본인들이 깜짝 놀라던 것이 기억이 나요. 사진 7의 오른쪽은 대만 슈프림 매장에도 커밋 인형이 있어서 사진을 찍으러 가까이 갔더니 직원이 친절히 커밋을 꺼내주어서 같이 찍은 사진입니다. 말도 안 통하는 사이였지만 자연스럽게 꺼내주면서 내밀어주어서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커밋은 친구를 만났네요.

스린 야시장 안에 큰 절이 하나 있었는데, 밤시간이라 문을 닫아서 거기서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었습니다. 저도 쉬면서 커밋도 큰 향로에 뉘여서 같이 쉬었습니다. 그 모습이 사진 8입니다. 대만의 절들은 굉장히 크고 화려하다는 것이 한국의 절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절을 못 본 것 같은데, 대만의 절들은 원래 다 그렇게 크고 화려하다고 가이드북에 써있더라구요. 뭔가 청나라 시대물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8. 스린 야시장에서


 9. 에류 지질공원


다음날이 되어 예류 지질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예류 지질공원은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곳인데, 약간 제주도의 공원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기암괴석들 주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인형을 들고 혼자 다니는 저를 자꾸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런 돌들은 사진을 찍지 않고 기암괴석 가까이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바닷가가 좋아서 거기서 비교적 긴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돌과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제주도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섬은 제주도였나 봅니다.


10. 예류의 바다


  

사진 10의 우측 위쪽에 보이는 기암괴석들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습니다. 그냥 커밋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큰 바다를 계속해서 보고 바다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바다 모습을 계속 보는 것이 이해가 안가고 지겹고 빨리 다른 곳에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큰 물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습니다. 바다처럼 너른 마음을 갖고 많은 사람들을 품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고, 바다처럼 고요하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예류의 바다는 약간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howth 지역 바다와 닮았습니다. 마침 제가 howth에 갔을 때도 날이 흐렸는데, 예류 바다도 날이 흐렸고 짙은 색의 깊은 바다를 계속해서 봤으니까요.

 

11. 진과스 탄광 마을


일정이 촉박해서 마음이 급했던 저는 예류를 부랴부랴 떠나 진과스 탄광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진과스는 일제시대에 개발된 황금광산이 자리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일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왼쪽 아래의 사진이 신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정말 그렇게 계속 산길을 올라가야 할 줄은 몰랐지만, 올라가서 보니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신사는 전부 헐려서 기둥과 터만 남아있었는데, 황량한 신사 터를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신사 터 안쪽에는 주춧돌 자리가 남아 있는데, 그 위에 사람들이 많은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을 빈 흔적이 있습니다.

마을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고즈넉하게 산책하기 좋습니다. 일본식 가옥의 흔적도 많이 남아있고, 대만 사람들의 과거 축제에 대한 작은 전시도 진행되고 있었고, 광부들이 먹었다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식당도 있습니다. 저는 광부도시락을 먹지는 않았지만, 대만 정부는 일제의 흔적을 이렇게 잘 고스란히 보존해놓았고 그것을 관광자원으로 잘 가꾸어놓았구나 싶어서 부러웠습니다. 어쨌든 이 광경을 보면 다시금 일제시대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럽고, 걷기 좋게 꾸며놓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좋으니까요. 다시 가게 된다면 사실 하루 종일 진과스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2. 지우펀


13. 지우펀 홍등


 

  

지우펀은 사실 사진상으로는 예쁘지만 직접 갔을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내가 지금 사람을 보러 온건지 홍등을 보러 온 것인지 헷갈렸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고 난 것을 보니 결과물이 예뻐서 만족스럽네요. 하지만 다시 가진 않을 것 같아요.

이 다음날에는 타이페이시에서 가장 가까운 온천에 들른 뒤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온천이 그렇게 계단계단 굽이굽이 타고 내려간 아래에 있는 줄 알았더라면 트렁크를 들고 절대 가지 않았을 거에요. 작은 노천탕이 하지만 너무 좋아서, 다음에 대만에 간다면 매일매일 온천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4. 지우펀 홍등


생활이 빠듯해서 갑작스런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비온 뒤 무지개재단 덕분에 너무 잘 다녀왔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나도 해외 퍼레이드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재단 덕분에 이렇게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 퍼레이드를 보면서도 계속 서울에서 하는 행사 생각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니 아마 퍼레이드를 정말 참가자의 마음으로 즐기려면 저에겐 꽤 긴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비온뒤무지개재단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성소수자인권활동가로 살아가면서 이런 재충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 너무 꿈만 같아요. 활동가로 살면서 이런 재충전의 기회가 있을 거라고 사실 생각도 해보지 못했고, 이렇게 빠르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비온뒤 무지개재단과 긴 시간 함께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제 보고서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위와 같이 2015이창국기금 활동가 생기충전기금 결과보고서를 제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