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학술

[2018] 여행자 극단 설립을 위한 즉흥연기 워크샵 지원 후기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운영진 헤일러

 

문화생활이라 불릴만한 활동을 많이 해보지 않은 제게 있어 연극은 낯설었고, 즉흥극이라 하면 더더욱 그랬지만, 이전에 여행자 회원들과 함께 목요일오후한시의 잠못드는밤즉흥극을 관람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극을 감상하는 건 두 번째였는데, ‘잠못드는밤은 제게 상당히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즉흥극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저의 이야기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연기로 풀어낼 수 있다니요. 상당히 개인적이고 민감한 주제라서 의문스러웠지만, 그 연극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후 도균님이 추진해주신 덕에 즉흥연기 워크샵까지 직접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첫 회기에는 제 건강문제로 불참하고 이후부터 총 5명의 회원이 함께했습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비일상적인 동작과 소리를 내뱉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워크샵을 시작하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에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그런 이상한상황이 즐겁고 편안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편안하고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평소에 스트레칭 정도를 제외하면 편안한 옷을 입고 몸을 움직이고 뛰어놀 시간을 가질 기회가 적기 때문에, 워크샵 시간마다 활력을 얻기도 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정해진 강도와 정도로만 몸을 움직이는 일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는 일은 그 낯선 느낌 자체로 즐거웠습니다.


글자 그대로 즉흥극이기 때문에, 극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필요했습니다. 사실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짧은 장면들을 즉흥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회원들과 언어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제안과 수용이라는 기법을 통해 무대 위에서 상대방의 연기 제안을 즉흥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원하는 바를 유추해보는 일 또한 필요했지만, ‘함께 장면을 만든다는 적극적인 의식도 중요했습니다. 워크샵의 후반부에는 그간 배운 다양한 기법들을 모아 그 자리에 있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보았는데, ‘잠못드는밤에서 느꼈던 것보다 더 저에게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짧지만 몇 달간 함께한 사람들이 저의 이야기를 듣고, 제가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 만든 연극을 보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고 귀중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경험시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게는 워크샵 내에서 배운 다양한 즉흥극의 기법들 그 자체보다, 이를 활용한 장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회원들과 느낀 친밀함이나 다른 좋은느낌들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워크샵이 짧은 회기로 진행된 탓도 있지만, 일상의 정형화된 모습을 내려놓고 사람들과 몸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동안 그 내부에서 어떠한 공동체가 만들어진 듯 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활동이 한 회기에 그치지 않고 몇 주, 몇 달 동안 지속되어 일상의 일부가 되었던 일이 기뻤습니다. 소중한 경험을 만들어주신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와 비온뒤무지개재단, 이반시티퀴어문화기금 측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