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앨라이 모델은 ‘한국 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자원활동가와 비온뒤무지개재단 햇살3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 앨라이 희성님입니다. 앨라이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세상이 다른 세상으로 보이는, ‘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 이라는 희성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현재 비온뒤무지개재단 자원활동가 햇살, 퀴어락 자원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지리학을 전공하며 퀴어의 공간성, 공간의 퀴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Q. 앨라이 캠페인을 알고 있었나.
A. 작년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첫 거리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알게 되었다. SNS를 통해 재단 소식을 구독하고 있었는데 앨라이 캠페인 소식을 듣고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스스로를 비당사자라 생각했던 내가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때였는데, 앨라이 캠페인은 쉽게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성소수자 이슈에 전혀 관심이 없던, 홍대 가까이 살던 친구를 끌고 거리캠페인 현장에 갔다. 장소가 경의선 숲길이었기 때문에 그냥 놀러가자고 꼬여내기 좋았다.(웃음) 친구 직업이 청소년 지도사인데, 설명을 듣고는 좋은 캠페인이라며 함께 선언에 참여하고, 저녁 먹는 내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학생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Q. 본인이 앨라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따로 있나.
A. 부끄럽지만, 사실 이전엔 성소수자 인권 이슈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로 퀴어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성소수자 인권문제를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시작했고, 활동으로 이어졌다. 앨라이라는 단어를 나중에 접했다. 이전엔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활동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앨라이 캠페인을 알게 된 뒤로는 ‘나를 이렇게 부르면 되겠구나.’ 싶었다.
Q.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참여할 때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앨라이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이 되어준 것 같다.
A. 예전에 성소수자 행사에 참여했을 때 다소 섞이기 어렵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들고. 가령 ‘이성애자들이 이러이러한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자각 없이 혐오발언을 했던 기억도 있고, 거기서 온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한번은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발언하는 게 싫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국의) 앨라이 캠페인은 비성소수자 앨라이만 뜻하지 않지만, 앨라이 캠페인 이후 (활동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많이 낮아진 느낌이었다.
Q. 인터뷰를 하면서 앨라이 캠페인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지만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혹은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앨라이 캠페인을 통해 ‘나와서 함께 행동해 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이 생각하는 성소수자의 앨라이는 어떤 사람인가? 혹은 앨라이로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A. 사람이 한 번에 큰일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내 주변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봐. 이게 얼마나 억울한 일이야!’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리게 하는 것도 앨라이의 역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누른 ‘좋아요’가 내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에게도 보이니까 페친 안 맺어야지 했던 사람들과도 페친을 맺고 관련 이슈를 열심히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내가 너의 뉴스피드에 끊임없이 이 소식을 띄우겠다!’, ‘네가 찾아보지 않을 테니 내가 계속해서 들이밀겠다!’ 같은 느낌. 사실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내 주변에 없으니까 별 관심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이슈들을 주변에 공유한다면, 이전에는 성소수자 이슈를 접할 기회가 없던 사람들도 한번이라도 더 성소수자 인권 관련 이슈를 접하게 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 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혐오발언을) 내뱉던 사람들도 그런 말을 못하게 되더라. 완전히 생각이 바뀌진 않아도 최소한 그런 말을 뻔뻔하게 하지는 않게 되는 것 같더라. 관련 이슈들을 계속 이야기하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
Q. 대단히 큰 결심이 아니라도 주변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 중 하나인 것 같다.아직 앨라이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앨라이 선언 참여의 필요성을 설명한다면.
A. 얼마 전 엄마에게 논문 이야기를 하는데 (논문 주제는 퀴어문화축제다.) 엄마가 ‘너 논문만 쓰고 그거(활동)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TV 보면 국회의원 같은 사람들도 못하는 건데 네가 뭘 할 수 있겠냐고. 나는 ‘그거 되게 좋은 아이디어다!’라고 했다. 혐오의 목소리가 커졌는지 작아졌는지와 상관없이,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말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사람들에겐 또 다른 혐오의 근거가 되어준다. 엄마는 나를 걱정해서 ‘거봐, 저런 높은 사람들도 못하는 문제야.’라고 하고, 혐오세력은 ‘거봐, 다른 국민들도 비난하잖아!’가 된다. 앨라이 선언처럼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앨라이 선언을 하는 게 당장 혐오세력을 줄이거나 세상을 확 바꾸지 못하더라도, 이런 사람(앨라이)들이 존재하고 점점 많아진다는 사실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앨라이 각자가 주변을 바꿔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앨라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를 바꿔나갈 필요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온뒤무지개재단 햇살3기로 활동 중인 모습. 거리캠페인과 각 지역 퀴어문화축제에서 "나는 앨라이입니다." 캄페인을 홍보하고 선언을 받았다.
Q.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는 “나는앨라이입니다.” 캠페인을 통해 앨라이라는 개념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앨라이로서 커밍아웃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그리고 많은 앨라이들과 함께 힘을 모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더 많은 시민들이 성적소수자 인권을 지지하고, 앨라이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의 한마디를 부탁한다.
A. 이편도 저편도 아니고 관심이 없다고, 나는 중립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인권을 두고 중립적이라는 입장은 위험하다. 아무 것도 안한다는 게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건가? 앨라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나는 성소수자를 차별은 안 해, 근데 내 주변엔 없었으면 좋겠어.’ 같은 말을 하는데, 사실 그게 바로 혐오다. 정말로 차별에 반대한다면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하는 걸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성소수자 인권을 공부하고 관련된 사건들을 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게 성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깨닫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그랬을 때 내가 바뀌고 내 주변이 바뀔 수 있다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인권을 완전히 별개의 문제로 놓고 ‘내가 너의 인권을 지지한다.’가 아니라, 인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익숙하고 편했던 것들과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이를 통해 나 스스로가 반성하고 배우고 변화할 수 있다. ‘내가 너를 지지하는 일이 결국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약간 다른 이야기인 것 같은데, 논문 주제로 퀴어문화축제를 다뤘는데,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퀴어 이슈가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할 때마다 사실 굉장히 화가 났다. 퀴어문화축제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그 안엔 내 주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마치 외계행성의 일인 냥 떨어져서 이야기를 하더라. 서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더 많이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면 좋겠다. 얘기하다 보니 앨라이 캠페인 참여 독려가 아닌 것 같은데.(웃음)
Q. 성소수자의 인권향상이 모두의 인권향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앨라이 캠페인 참여 독려이기도 한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아는 언니가 페미니즘을 알려주면서 해준 말이 ‘필터를 끼우는 것과 같을 거다. 네가 보는 세상이 달라질 거다.’였다. 활동을 하면서 그 말에 정말 공감이 갔다.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배우면서는, 필터라기보다 현미경처럼 렌즈를 하나 새로 끼운 느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못 봤던 것들이 이 렌즈를 끼우니까 보이더라. 잘못된 줄 모르고 살던 많은 부분들에서 잘못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너는 그걸(성소수자 인권이슈를) 공부하는 게 재미있냐고 물으면 나는 정말로 그렇다고 한다. 보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똑같은 세상이 다른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이미 선언을 하신 분들이라면 주변 친구들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 첫 캠페인 때 친구를 데려오고 두 번째 캠페인 때 후배들을 데려왔었는데 이렇게 자꾸 떼로 데려오면 좋지 않을까(웃음). 날씨 좋은 날 놀러온다 생각하고.◎